피해자가 먼저 법을 어겨야만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 사회의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넷플릭스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를 보는 내내 저는 이 질문을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일본 소설 '나오미와 가나코'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이라는 현실의 문제를 범죄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 날 것으로 담아낸 드라마입니다.

라면 한 그릇을 편하게 먹지 못했던 삶, 그게 현실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화려한 반전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이 사라지고 나서야 희수가 혼자 라면을 먹으며 웃음을 짓는, 아주 작고 평범한 그 장면이었습니다. 그 장면 하나가 이 인물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숨을 죽이며 살아왔는지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그 무게가 느껴져서, 솔직히 한동안 멍하게 있었습니다.
희수(이유미 분)는 가정폭력 피해자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유형에 속합니다. 남편 진영(장승조 분)은 사회적으로는 인정받는 인물이지만, 집 안에서는 폭력을 반복하고 보석이나 돈으로 사과를 대신합니다. 이런 패턴을 심리학에서는 학대 사이클(abuse cycle)이라고 부릅니다. 학대 사이클이란 폭력-사과-화해-긴장 고조가 반복되면서 피해자가 관계를 떠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붙잡아 두는 구조를 뜻합니다. 드라마는 이 구조를 설명하지 않고 그냥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 섬뜩했습니다.
더 불편했던 건 주변 인물들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여성학을 연구하는 학자이면서도 자신의 며느리에게 벌어지는 폭력에는 눈을 감습니다. 시누이는 형사임에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침묵을 선택하죠. 제가 이 장면들을 보며 느낀 건 분노보다는 서글픔에 가까웠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처음엔 도움을 요청하다가 점점 무기력해지는 이유가, 이렇게 가까운 데서 문이 닫히기 때문이라는 걸 드라마가 정확하게 짚어냈습니다.
여성가족부의 자료에 따르면, 가정폭력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여성가족부). 이 수치를 드라마 속 희수의 얼굴과 겹쳐 보았을 때, 저는 이게 단순히 드라마 속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당신이 죽였다>에서 주목할 만한 연기적 관전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유미: 신체적, 정신적 피폐함을 내면 연기로 표현한 희수 역. 과장 없이 무너지는 연기가 설득력 있습니다.
- 전소니: 감정을 철저히 억누른 채 상황을 통제하는 은수 역. 차갑지만 따뜻한 이중성을 설득력 있게 구현했습니다.
- 장승조: 사회적 자아와 폭력적 자아를 동시에 연기하는 1인 2역.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온도 차를 보여줍니다.
악을 악으로 심판하는 것, 우리는 이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은수(전소니 분)가 먼저 "남편을 죽이자"고 제안하는 장면은 드라마의 가장 강렬한 전환점입니다. 이 제안이 충격적인 동시에 이상하게 납득이 가는 이유는, 그 전까지 두 사람이 법적 구제 수단을 포함한 모든 정상적인 방법을 이미 시도했거나 고려했음을 드라마가 충분히 설명해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 묵직하게 올라옵니다. 법적 구제 수단이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저는 이 부분에서 생각이 복잡해졌습니다. 악한 존재를 없애야 한다는 감정적 공감은 생기지만, 그 방식이 또 다른 범죄라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도덕적 딜레마(moral dilemma) 앞에서 단순하게 "이게 맞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도덕적 딜레마란 어느 선택을 해도 윤리적으로 완전히 정당화되기 어려운 상황을 말합니다.
법원이 보호명령을 발부해도 실질적인 보호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이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듭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가정폭력 사건에서 가해자에 대한 실질적 처벌로 이어지는 비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출처: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드라마가 허구적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두 주인공이 완전범죄(perfect crime)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과정 역시 단순한 스릴러적 재미를 넘어섭니다. 완전범죄란 증거를 완전히 은폐해 수사기관이 범죄 사실 자체를 입증하지 못하게 만드는 범행 방식을 말합니다. 두 사람이 알리바이를 맞추고 심리적 압박을 버텨내는 장면들은, 이들이 느끼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관객이 함께 짊어지게 만듭니다. 그게 이 드라마가 단순한 복수극과 달리 여운이 긴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제 주변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면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그 불편한 자문이 며칠 동안 이어졌습니다. 어쩌면 그게 이 드라마가 의도한 바일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나쁜 놈이 사라져서 다행이다"로 끝나지 않도록 설계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죽였다>는 결말에서도 쉬운 답을 주지 않습니다. 완전범죄가 성공했는지 여부보다, 그 이후 두 사람의 삶이 정말 구원받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더 오래 남습니다. 복수 이후의 삶이 진짜 자유인지, 아니면 또 다른 감옥인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이 드라마의 진짜 힘입니다.
법과 제도가 먼저 사람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법의 실효성을 높이고, 사회적으로 폭력 피해자를 외면하지 않는 시스템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드라마 속 희수와 은수의 선택을 단순히 비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당신이 죽였다>를 보고 나서 찝찝한 감정이 남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 드라마를 제대로 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안 보셨다면, 한 번은 꼭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