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영웅 Class 1이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라는 걸 알고 나니, 잔인한 장면이 연달아 나오는 것 아닐까 살짝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기 시작하고 나서는 중간에 끊을 수가 없었습니다. 폭력보다 훨씬 묵직한 무언가가 계속 화면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밖에 모르던 아이가 친구를 만났을 때
저도 처음엔 주인공 연시은이라는 캐릭터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친구도 필요 없고, 관계도 원하지 않으며, 그저 공부만 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 보통 드라마라면 이런 인물을 조력자로 배치하거나, 금방 변화시키는 방식을 택했을 텐데, 이 작품은 달랐습니다.
연시은은 폭력에 맞설 때 신체 능력 대신 도구와 물리 법칙을 활용합니다. 이른바 역학적 원리(力學的 原理)를 싸움에 적용하는 장면들인데, 역학적 원리란 뉴턴의 운동 법칙처럼 힘과 질량, 속도의 관계를 분석해 결과를 예측하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그 냉정한 머릿속과 달리 연시은 눈빛에는 지독한 외로움이 배어 있었고, 그게 보는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러다 안수호를 만나면서 달라집니다. 박지훈이 연시은을 연기하는 방식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저는 박지훈 배우를 이 드라마에서 처음 접했습니다.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 캐릭터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 "이 사람이 연시은이구나"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그 조용한 변화, 처음으로 친구라는 존재를 귀히 여기게 되는 과정이 드라마 끝까지 이어지면서 제가 가장 크게 감동받은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세 소년의 다른 선택, 다른 결말
이 드라마가 단순한 학원 액션물과 다른 지점은 세 인물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거나 무너진다는 데 있습니다. 같은 시대, 비슷한 상처를 가졌지만 주위 환경과 관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 그게 이 작품의 진짜 핵심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안수호(최현욱 분)는 타고난 에너지와 의리로 시은 곁에 있어 줍니다. 그 존재 자체가 시은을 조금씩 열리게 만든다는 점에서, 건강한 또래 관계가 청소년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몸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반면 오범석(홍경 분)은 가장 비극적인 캐릭터입니다. 권력을 가진 부모 밑에서 겪은 정서적 학대, 쉽게 말해 신체적 폭력이 없더라도 언어적 무시나 과도한 통제로 아이의 심리가 왜곡되는 과정이 이 인물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저는 부모의 입장에서 오범석을 바라보면서 여러 번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소속감을 원하는 아이가 증오로 가득 찬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 그걸 만들어낸 게 결국 어른이었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세 인물을 한자리에 모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연시은: 고립 속에서 지적 자기방어를 택했지만, 관계를 통해 처음으로 인간적 온기를 경험함
- 안수호: 건강한 정서적 지지자로서 관계의 힘이 어떻게 타인을 변화시키는지 보여주는 인물
- 오범석: 왜곡된 양육 환경이 만들어낸 비극, 소속감 결핍이 결국 파국으로 이어지는 서사
연출이 만들어낸 불안감, 그게 이 드라마의 힘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이 드라마는 장면보다 소리로 먼저 긴장을 만든다는 점이었습니다. 볼펜 심을 누르는 소리, 가빠지는 숨소리 같은 세밀한 음향이 인물의 심리 상태를 직접 전달합니다.
이를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이라고 부릅니다. 사운드 디자인이란 시각적 장면과 별개로 음향을 구성하고 편집해 감정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보통 액션 장면에서 음악을 키우거나 타격음을 강조하는 방식을 쓰는데, 이 작품은 오히려 소리를 줄이고 미세한 것을 증폭시키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그게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시각적으로도 미장센(Mise-en-scène)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요소, 즉 조명, 색감, 배우의 위치, 소품까지 의도적으로 구성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연출 방식입니다. 이 드라마는 교실과 골목을 차갑고 서늘한 색조로 담아내어, 소년들이 처한 현실이 얼마나 냉혹한지를 말 없이 전달합니다. 그 색감만으로도 이 세계가 그들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느껴졌습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모든 배우들이 연기 앙상블(Ensemble)을 완성도 있게 구현했다는 점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연기 앙상블이란 주연 한 명이 이끌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여러 인물이 서로의 연기를 받쳐주며 전체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는 협연 방식을 말합니다. 어느 장면에서도 겉도는 연기가 없었다는 게 드라마 전체의 완성도를 높인 이유라고 봅니다.
드라마 속 폭력, 그리고 현실의 우리 아이들
이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건 폭력 장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폭력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주변 어른들은 어디 있었는지가 계속 머릿속에 남았기 때문입니다.
교육부 학교폭력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초중고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2.1%로, 10년 전과 비교해 피해 유형이 사이버폭력, 언어폭력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습니다(출처: 교육부). 드라마 속 구조적 폭력, 즉 권력을 가진 집안의 아이가 학교 안에서 무소불위처럼 행동하고 교사와 제도가 침묵하는 장면들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더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아직 어린 10대들이 잘못된 어른의 모습을 부러워하고 따라가려는 현실이 저는 가장 안타깝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드라마가 만들어낸 문제가 아니라, 드라마가 현실을 그대로 가져온 것에 가깝습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의 역할 모델 형성에 가정 환경과 또래 관계가 미치는 영향이 미디어보다 훨씬 크다는 결과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결국 드라마 안의 오범석을 만든 건 드라마가 아니라 그 집의 어른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잔인한 장면보다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 그게 이 드라마를 제대로 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약한영웅 Class 1을 아직 안 보셨다면, 폭력 드라마라는 선입견은 잠시 내려놓고 한 번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소년들의 이야기가 생각보다 오래 마음에 남을 겁니다.